- 1부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
1328년, 프랑스의 왕 '샤를 4세'가 후계자 없이 사망하자 '샤를 4세'의 사촌인 '필리프 6세'가 프랑스의 왕으로 즉위하였는데,
'샤를 4세'의 조카인 잉글랜드의 왕 '에드워드 3세'가 여기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이윽고 영토를 놓고 재차 충돌한 프랑스와 잉글랜드는 결국 1337년에 전쟁을 벌이게 됩니다.
이 전쟁을 '백년전쟁'이라 부릅니다.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00028&cid=40942&categoryId=31787
전쟁 중반기까지는 잉글랜드가 프랑스군을 격파하며 승기를 잡는 듯했으나, 전쟁 후반기에 나타난 프랑스의 영웅 '잔다르크'의 맹활약으로
상황이 급변하여 잉글랜드는 결국 패배하게 되었고, 프랑스 지역의 남은 영토를 모조리 상실하고 맙니다.
'백년전쟁'의 패배 직후 잉글랜드에선 요크 가문(백장미)과 랭커스터 가문(빨간 장미)의 왕위를 둘러싸고 전쟁을 벌입니다.
이 전쟁을 '장미전쟁'이라 부릅니다.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922307&cid=47323&categoryId=47323
전쟁은 30년 동안 지속된 끝에 랭커스터 가문의 방계인 '헨리 튜더'가 요크 가문의 딸과 결혼하면서 종결되었고,
'헨리 튜더'는 1485년에 잉글랜드의 왕으로 즉위하여 '헨리 7세'가 됩니다. 여기서부터 '튜더 왕조'가 개막합니다.
뒤이어 즉위하여 아일랜드를 정복하는 성과를 거둔 '헨리 8세'는 원래 아내인 '캐서린'과 이혼하고 '앤 불린'과 결혼하려 했는데 로마 교황이 이혼을 허락하지 않자,
로마 가톨릭과 잉글랜드 교회를 분리하여 독자적으로 ‘영국 국교회’를 창시하게 됩니다.
이후 즉위하여 영국 국교회를 정착시킨 '엘리자베스' 여왕은 해군을 키워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물리치고는 해외 식민지를 건설하기 시작합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평생 결혼을 하지 않아 후계자 없이 사망하였고,
엘리자베스 여왕의 친척이자 스코틀랜드의 왕인 '제임스 스튜어트'가 1603년에 잉글랜드의 왕으로 즉위하게 됩니다. 여기서부터 '스튜어트 왕조'가 개막합니다.
이로써 '제임스 1세'부터는 잉글랜드의 왕이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의 왕을 겸직하게 됩니다.
'제임스 1세'의 뒤를 이은 '찰스 1세'는 절대왕권을 행사하려다 의회와 대립하였고, 결국 ‘의회파’와 왕을 지지하는 ‘왕당파’ 간에 내전이 발발하게 됩니다.
하지만 '찰스 1세'는 의회파에 패배하여 1649년에 처형을 당하게 되고, 의회파 승리의 주역인 '올리버 크롬웰'이 공화정을 선포하였으며,
‘호국경’ (Lord Protector)에 취임한 후 나라를 통치하게 됩니다. 이를 '청교도 혁명'이라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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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올리버 크롬웰'이 죽자 처형당한 '찰스 1세'의 아들들이 다시 왕으로 복위하여 재차 절대왕권을 추구하였습니다.
이에 또다시 불안감을 느낀 의회는 왕의 사위인 네덜란드의 '빌렘 오라녜' 공에게 잉글랜드의 왕위를 제안하게 됩니다.
이를 수락한 '빌렘 오라녜' 공이 군대를 이끌고 영국에 상륙하자 왕 '제임스 2세'는 프랑스로 망명을 해버리고,
이리하여 '빌렘 오라녜' 공과 '메리' 부부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영국의 공동 왕으로 즉위하게 됩니다.
이를 '명예혁명'이라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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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는 곧바로 왕권을 제한하고 의회정치를 확립하는 내용의 ‘권리장전’을 제정하였고,
윌리엄 3세(빌렘 오라녜), 메리 2세 공동 왕이 1689년에 이를 승인하면서 영국은 세계 최초로 입헌군주제 국가가 됩니다.
이윽고 이 부부 왕의 딸인 '앤' 여왕을 마지막으로 스튜어트 왕조의 대가 끊기자,
'제임스 1세'의 외증손자인 독일 하노버 가문의 '게오르크'가 영국 왕으로 즉위하여 '조지 1세'가 됩니다. 여기서부터 '하노버 왕조'가 개막합니다.
하지만 1837년에 '빅토리아' 여왕이 즉위하자, 여성의 왕위 계승을 인정하지 않는 하노버 왕가와 영국의 왕가는 관계가 단절되었고,
이후 영국의 왕가는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 '앨버트' 공의 가문인 작센-코부르크-고타 왕조가 됩니다.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되어 급격한 산업화가 이루어졌고,
영국은 이 우월한 기술력과 압도적인 군사력을 바탕으로 세계의 여러 나라들을 짓밟은 뒤 식민지로 삼아버렸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식민지 건설을 통해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리며 세계 제일의 패권국으로 등극하게 됩니다.
하지만 19세기 후반에 강력하게 성장한 독일에 의해 붕괴된 유럽 세력의 균형은 1914년, 1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초래하고 맙니다.
영국은 삼국 협상(영국-프랑스-러시아의 동맹)에 의거하여 독일과 맞서 싸웠는데,
영국의 왕 '조지 5세'는 독일을 향한 국민감정이 악화되자 왕가의 이름을 '작센-코부르크-고타'에서 '윈저'로 개명합니다.
4년간의 혈투 끝에 승전국이 된 영국은 전쟁 이후 아일랜드의 독립도 허용하게 됩니다.
세계 대공황의 직격탄을 맞은 독일에서 '히틀러'가 등장하였고, 히틀러는 이내 야욕을 드러내며 주변국을 삼키려 하지만,
이미 끔찍한 전쟁을 경험한 바 있는 영국의 '체임벌린' 총리는 전쟁을 피하기 위해 '히틀러'에게 유화적인 태도를 취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오히려 자신감이 상승해버린 '히틀러'는 결국, 1939년에 폴란드를 침략하면서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자 영국에선 '체임벌린' 총리가 실각하고, 강경파인 '윈스턴 처칠'을 총리로 하는 전시내각이 출범하게 됩니다.
프랑스가 독일에게 굴복한 와중에도 '처칠'은 끝가지 '히틀러'와 싸울 것을 천명하였고, 이후 영국은 미국과 소련의 도움을 받아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승전국이 된 영국은 변화하는 세계의 흐름에 따라 그동안 지배해왔던 식민지들의 독립을 허용하였고, 이후 세계의 경제와 문화에 큰 영향을 끼치며 오늘날의 영국까지 이어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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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역사적 시간의 흐름에 따라 영국 역사를 알아보았습니다.
수백, 수천 년 동안의 긴 역사를 글 하나에 모두 담을 수는 없었지만,
'전체적인 흐름은 이렇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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