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레일리아(Australia),
호주는 라틴어로 'Terra Australis'라는 개념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남쪽의 땅'이라는 뜻으로, 고대 유럽인들이 상상한 가상의 남쪽 대륙이었습니다.
고대 서양인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북쪽 말고 남쪽에도 큰 대륙이 있을 것이라고 상상했었으며, 실제로 남쪽에 가본 적은 없지만 상상의 대륙에 이름을 붙여줬던 것이죠.
시간이 흘러, 대항해 시대 이후 유럽인들이 호주 대륙을 발견하자 오래전부터 상상한 이름을 이 새로운 대륙에 붙여주었던 것입니다.
상상의 대륙, 호주
어떠한 역사를 가지고 지금의 호주가 되었는지 간략하게 알아보겠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호주라고 부르는 대륙의 역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되었습니다.
현재 호주 인구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백인들이 이곳으로 이주하기 전, 이미 흔히 ‘원주민’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원주민들은 약 6만 5천여 년 전, 동남아시아에서 바다를 건너 새로운 대륙인 호주에 정착하였고, 이들은 수렵채집에 기반한 사회를 가꾸어 나갔었습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17세기, 유럽인들이 호주 대륙에 도착했을 때, 대략 75만 명의 원주민이 대륙에 살고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됩니다.
이 시기에 유럽인들은 어쩌다가 호주까지 오게 되었을까요?
사실 현재 호주 인구의 대부분이 영어를 쓰고 과거 호주가 영국의 식민지였기에 당연하게도 영국이 최초로 호주를 발견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가장 먼저 호주에 도착한 유럽인은 네덜란드 사람이었습니다.
때는 1605년, 대항해 시대의 물결을 타고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다프켄 호'의 선장이었던 ‘빌렘 얀스존’이 유럽인으로서는 가장 먼저 호주 대륙에 상륙했습니다.
그는 호주 북쪽의 '케이프 요크 반도'에 상륙해서 호주 대륙의 북쪽과 서쪽을 탐험했는데요. 얀스존의 발견 이후 네덜란드는 이 지역을 “뉴 홀란드(New Holland)”라고 이름 지었지만 이름과는 다르게 정작 이곳에 대규모 이민자를 보내거나 새로운 정착지를 건설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로부터 약 80년 후인 1688년, ‘마젤란’에 이어서 두 번째로 세계 일주를 하는 데 성공한 영국인 ‘윌리엄 댐피어’ 또한 “뉴 홀란드(New Holland)”에 상륙하지만, 영국 역시 일단은 이곳에 정착지를 세울 계획이 전혀 없었죠.
이렇게 얀스존에 의해서 호주 대륙이 발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새롭게 정착하는 이들이 없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호주 대륙이 유럽으로부터 지리적으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호주 대륙을 가장 먼저 발견한 네덜란드인들이나 영국인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 굳이 이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 이주해서 살만한 요인이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18세기 말이 지나면서 급변하게 됩니다.
바로 18세기 말에 있었던 세계사적 대사건, 미국의 독립 때문이었습니다.
1783년,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고 그것이 국제적으로 인정받게 되자 영국은 미국을 대체할만한 새로운 식민지를 건설할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얼마 전인 1770년, 영국의 탐험가 ‘제임스 쿡’에 의해서 이전에는 알려져 있지 않던 호주 대륙의 다른 부분도 탐험되었던 것이죠.
네덜란드가 발견하고 이름 붙인 “뉴 홀란드(New Holland)”는 호주 대륙의 북쪽 지역이었는데, '제임스 쿡'은 새롭게 대륙의 동쪽을 발견하고 탐험했던 것입니다.
'제임스 쿡'은 자신이 발견한 이 지역을 “뉴 사우스 웨일스(New South Wales)”라고 명명합니다.
이렇게 시대적 상황이 맞아떨어지게 되자 영국은 1787년 11척의 배로 구성된 “제1함대”를 제임스 쿡이 탐험한 호주 대륙의 동쪽으로 보내서 호주 대륙 최초의 유럽인 정착지를 세우게 됩니다.
11척의 배로 구성된 “제1함대” 중 두 척은 영국 해군 소속의 군선, 세 척은 보급선, 나머지 여섯 척은 1000여 명 정도의 죄수를 실은 배였습니다.
이렇게 죄수들을 새로운 식민지로 보내는 것은 사실 영국이 미국의 독립 이전에 북아메리카 식민지에도 적용했던 정책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새로운 식민지에 유죄판결을 받은 죄수들을 보내 정착지를 만드는 것은 호주에게만 적용되는 특수한 사례가 아니라 영국의 일관된 정책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 1848년 마지막으로 죄수들이 영국 정부에 의해서 집단 이송되기 전까지, 영국은 꾸준히 이 새로운 대륙에 죄수들을 보내죠.
1850년대에는 대륙에서 금광이 발견되면서 죄수들을 이송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이주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었습니다.
어찌 되었든, “제1함대”는 1788년 1월 26일, 오늘날의 시드니의 '포트잭슨(Port Jackson)'에 도착해서 정착지 건설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들이 본격적으로 식민지 개척을 시작하게 된 이 날은, 현재에도 “오스트레일리아의 날(Australia Day)”, 즉 “호주의 날”로서 호주에서 중요한 국경일로서 기념되고 있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날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오스트레일리아의 날 행사 (멜버른) 오스트레일리아의 날(영어: Australia Day 오스트레일리아 데이[*])은 1788년 1월 26일 영국 제1함대 선원들과 영국계 이주민들이 오스트레일리아의 록스 지역에 최초로 상륙하여 오늘날의 시드니를 개척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날로 대한민국의 개천절과 같은 오스트레일리아 최대의 국경일 중 하루이다. 이 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캔버라와 시드니, 멜버른, 브리즈번, 퍼스, 다윈 등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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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오늘날 시드니라 불리는 지역에 도착한 이들은 초기까지만 해도 해안가에 위치한 정착지에서만 생활했고, 호주 대륙의 내륙은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많은 부분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져 있었습니다.
1813년, 일련의 영국인 탐험가들이 일명 '블루 마운틴'을 넘어 호주 내륙을 탐험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내륙 지역 역시 지도상으로 밝혀지게 되죠.
그러나 꾸준한 탐험 활동에도 불구하고 19세기 중반까지도 호주 내륙의 많은 부분은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습니다.
- 2부에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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