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계략
중국 청나라 말기, 영국에서는 차가 많이 유행하고 있었습니다.
중국산 차가 인기가 아주 좋았기 때문에 영국은 중국에 은을 지불하고 차를 수입해왔습니다.
차 수요가 폭증하고 무역 적자가 심해지고 있었기 때문에 영국은 돈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영국은 못된 방법을 하나 생각해냈습니다.
영국은 영국 식민지였던 인도에서 재배한 아편을 중국에 팔기로 한 것입니다.
인도는 영국 식민지였기 때문에 영국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아편 판매
방법은 이렇습니다.
먼저 영국은 원래 하던 대로 중국에 은을 주고 차를 수입해 왔습니다.
여기까지는 보통의 무역과 다를 바 없었지만, 뒤에서는 몰래 인도를 시켜 아편을 팔고 은을 받아오도록 만들었습니다.
아편은 양귀비에서 나는 마약의 한 종류입니다.
이렇게 해서 청나라에 양귀비, 즉 마약이 서서히 흘러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삼각무역'이라고 합니다.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09054&cid=40942&categoryId=31864
청나라의 분노
사실 말이 무역이지 이득을 보는 곳은 영국밖에 없었습니다.
영국은 산업혁명으로 남아도는 면,직류를 인도에 팔고 은을 다시 빼앗아 왔습니다.
영국이 중국에 찻 값으로 낸 은을 인도가 아편을 팔아 회수해 오고, 그 은을 다시 영국이 빼앗아 왔습니다.
이를 통해 영국은 은을 한 푼도 내지 않고 차를 얻게 된 것이었습니다.
한편 청나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마약중독자들로 넘치게 되었습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마약에 빠져들었습니다.
이에 청나라 정부는 매우 화가 난 상태였습니다.
마약 때문에 사회가 문란해지고 경제가 눈에 띄게 망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반해 영국은 중국이 열어준 광저우의 무역 항구에서 마약을 팔아 돈을 벌고 있었습니다.
두고 볼 수만은 없던 청나라의 황제는 영국이 마약을 못 팔게 하기 위해 임칙서를 파견해 아편을 모두 파기합니다.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37039&cid=40942&categoryId=34308
아편전쟁
이런 과정 속에서 청나라와 영국 상인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게 됩니다.
결국 청나라는 영국과 관계를 단교하게 됩니다.
청나라에서 일어난 이 아편 소동은 영국에까지 전해졌고 중국을 공격해야 한다는 여론이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영국 의회에서는 청나라와 전쟁을 벌일지 말지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전쟁 반대파는 영국의 양심이 고작 이 정도밖에 안되냐며 비판했지만 결국 전쟁 찬성파가 이기게 되며 전쟁은 시작됩니다.
아편전쟁은 이렇게 일어나게 됩니다.
난징 조약
1840년, 영국은 중국으로 밀고 들어갑니다.
청나라는 자기 나라가 세계의 중심이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사실 너무나도 약한 존재였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줄 모르고 힘 기르기를 소홀히 한 결과였습니다.
영국은 손쉽게 청나라를 박살 내고 중국이 불평등 조약에 서명하게 만듭니다.
이것이 바로 ‘난징 조약’입니다.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074754&cid=40942&categoryId=33398
불평등 조약
청나라는 영국과 싸울 힘이 없었기 때문에 이 굴욕적인 조약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중국의 위기가 찾아온 것이죠.
난징 조약에서 영국은 자기 나라의 물건을 더 팔기 위해 항구를 추가로 개항시키고
관리들이 독점하고 있던 공행 제도를 없애도록 만들어서 영국이 중국에 물건을 팔 때 세금을 덜 내도록 했습니다.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942446&cid=47323&categoryId=47323
홍콩 점령
그리고 이때 '홍콩 섬'을 중국에게서 빼앗기게 됩니다.
사실 홍콩은 이미 1년 전부터 영국이 강제로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이제야 정식으로 빼앗아온 것이었죠.
이때부터 홍콩은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고 중국 사회는 큰 충격과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제2차 아편전쟁
약 15년 뒤 1856년, 영국은 난징 조약을 맺고 나서도 중국에서 생각만큼 이득을 못 보고 있었습니다.
영국은 어떻게 하면 중국을 더 털어서 이득을 봐야 할지 궁리를 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사건이 터집니다.
영국이 해적선 ‘애로우 호’를 검거하는 과정에서 청나라 관리들이 영국 국기를 훼손한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전쟁을 일으킬 명분이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영국은 단지 핑곗거리가 필요했던 것이었습니다.
이 ‘애로우 호’ 사건으로 일어난 '제2차 아편전쟁'에는 프랑스도 가담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영국, 프랑스 연합군은 청나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2차 아편전쟁'입니다.
청나라는 이번에도 여지없이 무참히 박살이 났고 이 전쟁에서 중국 황실의 정원이었던 원명원도 모조리 파괴됩니다.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79418&cid=40942&categoryId=33076
베이징 조약
청나라는 영국 하나의 나라도 버거웠는데 프랑스가 가세한 연합군에 이겨낼 방법이 없었습니다.
중국은 더욱 철저히 유린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기회를 엿보던 러시아가 중재를 한다며 전쟁 판에 끼어듭니다.
사실 말이 중재지 러시아 또한 중국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러시아까지 끼어들어 ‘베이징 조약’을 맺게 되며 청나라, 영국, 프랑스, 러시아가 서명을 하게 되었습니다.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01453&cid=40942&categoryId=33398
무너져 가는 청나라
항구 10개가 추가로 개항되었고 선교사들이 중국 내에서 마음대로 포교(종교를 널리 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가 있는 '연해주'는 러시아가 가져갔고 '홍콩 섬' 위에 있는 '구룡반도' 또한 영국이 식민지로 접수해 갔습니다.
이렇게 한때 아시아를 호령했던 청나라는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어 열강들에게 물어뜯기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청나라는 과거의 영광을 잃고 무너져가는 나라에 불과했습니다.
1898년, 영국은 홍콩 위쪽의 '신계'까지 더 달라고 청나라에 요구합니다.
하지만 신계는 홍콩 섬과 구룡반도가 완전히 영국 식민지가 된 것과는 달리 99년 동안만 빌려 가기로 한 것이죠.
이렇게 해서 홍콩 섬, 구룡반도, 신계가 차례차례 영국 땅이 되면서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홍콩 영토가 모조리 영국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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